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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거슨 교수 “현재 미국 상황, 소련 붕괴 때와 흡사”

하버드대학의 역사학 교수 등으로 활동한 미국의 저명한 학자 니얼 퍼거슨은 최근 언론사 ‘더 프리 프레스’의 기고문을 통해 현재의 미국 상황이 붕괴 직전의 소련의 모습과 흡사하다고 지적했다. 스탠퍼드대학 후버 연구소 선임 연구원으로 활동 중인 그는 ‘둠 재앙의 정치학’, ‘키신저 평전’ 등 베스트셀러 작가로 한국에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는 ‘현재 우리는 모두 소련인과 같다(We’re All Soviets Now)’는 제목의 기고문에서, 미국을 “영구적 적자와 비대해진 군대를 가진 국가”라고 지적하며 “엘리트층이 밀어붙이는 거짓 이념과 일반 국민들의 열악한 건강, 노쇠한 지도자라는 문제에 직면한 상황”이라고 했다. 현재 상황이 소련 붕괴 당시의 모습과 비슷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의 핵심이다.     그는 현재 미국은 ‘신(新) 냉전’에 직면해있다며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중국이 미국의 라이벌로 급부상했다고 했다. 이념적 라이벌일 뿐만 아니라 인공 지능과 양자 컴퓨터 분야 등에서 미국과 기술 경쟁을 펼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소련 붕괴 당시의 상황을 자세히 소개하며 지금의 미국 상황과 비교하는 분석을 이어갔다. 그는 “스탈린이 구축하고 후대에 물려준 경제 체제는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개혁을 시도하자마자 무너졌다”고 했다. 그는 “소련 체제는 자원을 낭비했고 의료 시스템은 낡은 병원 시설과 장비 부족으로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했다”며 “지독한 가난과 굶주림, 아동 노동이 만연한 사회였다”고 했다.     퍼거슨 교수는 소련 말기 영아 사망률은 1000명당 25명 정도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2021년 기준 미국의 수치는 5.4명이지만 미시시피 등 시골 지역 미혼모 통계를 보면 1000명당 13명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무분별한 예산 낭비에도 생산성 개선 안 돼”   그는 소련 붕괴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은 무분별한 예산 낭비였다고도 했다. 그런데 미국 의회 예산국의 자료에 따르면 미국의 재정 적자가 당분간 국내총생산(GDP)의 5%를 뛰어넘고 2054년에는 8.5%까지 증가하게 된다고 했다.     그는 인공지능(AI)을 비롯한 기술 혁신으로 생산성이 늘어나야 하지만 미국의 비농업 부문 연평균 생산성 증가율은 2007년 이후 1.5%에 머물러 있고 이는 암울했던 1970년대보다 조금 나아진 수준이라고 했다.     퍼거슨 교수는 로저 위커 상원의원(공화·미시시피)이 발표한 자료를 인용, 미국 국방 예산이 잘못 사용되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그는 과거 소련 지도자들이 자국 군대가 가장 강력하다고 강조했던 사실을 상기시켰다. 그러면서 “하지만 실체는 그렇지 않았다”며 “소련군은 10년간 이어진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도 승리하지 못했었다”고 했다.     퍼거슨 교수는 서류상으로만 보면 미국의 국방 예산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모든 회원국의 국방 예산을 합친 것보다 더 많지만 예산이 제대로 쓰이지 않고 있다고 했다. 그는 위커 의원을 인용, “미군은 현대식 장비가 부족하고, 훈련 및 유지보수 자금이 부족하다”며 “장비 역시 너무 열악한 상황”이라고 했다. “중국, 러시아, 이란, 북한이 공격적으로 구축해 온 ‘반(反)민주주의 연합에 대항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노쇠한 정치 지도자와 팽배한 냉소주의     퍼거슨 교수는 현재의 미국과 소련 붕괴 당시의 상황에서 발견되는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유사성이 있다고 했다. 그는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유리 안드로포프, 콘스탄틴 체르넨코의 노쇠함으로 대표되는 노령자의 리더십은 소련 후기 리더십의 특징 중 하나였다고 했다.    브레즈네프는 1982년 사망 당시 75세였고 안드로포프는 브레즈네프의 뒤를 이을 때 겨우 68세였지만 취임한 지 불과 몇 달 만에 신부전으로 쓰러졌다고 했다. 체르넨코는 집권 당시 72세였다. 그는 이미 폐기종, 심부전, 기관지염, 늑막염, 폐렴으로 고생하는 상황에서 지도자가 됐다.     퍼거슨 교수는 조 바이든(81세)과 도널드 트럼프(78세) 역시 노쇠한 정치인들이라고 지적했다(편집자 注: 해당 기고문은 바이든 사퇴 전에 게재됐다). 바이든은 두 히스패닉계 내각 장관인 알레한드로 마요르카스와 자비에 베세라를 구분하지 못했고 트럼프는 니키 헤일리와 낸시 펠로시를 혼동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퍼거슨 교수는 소련 붕괴 당시 또 다른 특징은 거의 모든 제도에 대한 대중의 냉소주의였다고 했다. 그는 고르바초프의 ‘글라스노스트(개방)’정책에 따라 소련 시민들은 언론의 자유를 맛볼 수 있게 됐다며 시민들은 냉소주의에 빠져 있었다고 했다. 그는 1988년 7월까지 모스코브스키 노보스티가 실시한 여론조사를 인용, “44%의 사람들이 자신이 속한 사회가 ‘불공정한 사회’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는 최근 실시된 갤럽 여론조사를 보면 미국의 상황도 비슷하다고 했다. 대법원, 은행, 공립학교, 대통령직, 대형 기술 기업 등에 대한 신뢰도를 가진 대중의 비율은 25%에서 27% 수준이라는 것이다. 언론, 형사 사법 제도, 대기업, 의회에 대한 신뢰도는 20% 미만이며 의회만을 놓고 보면 8%에 불과하다고 했다. 주요 기관에 대한 평균 신뢰도는 1979년에 비해 약 절반 수준인 상황이다.     “마약·알코올 남용 등 사회 병리 현상 확산”    퍼거슨 교수는 미국 내에서 급증하고 있는 알코올 및 마약 중독 등과 관련된 이른바 ‘절망사(deaths of despair)’ 역시 큰 문제라고 했다. 2022년 기준으로 펜타닐 오남용으로 사망한 미국인의 수가 베트남 전쟁, 이라크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숨진 사람보다 더 많았다는 것이다.     그는 다른 선진국과는 달리 미국인의 기대 수명 역시 지난 10년 사이 크게 줄어들었다고 했다. 약물 과다 복용, 알코올 남용, 자살로 인한 사망자 수가 크게 늘고 비만 등과 관련한 질병이 증가한 것이 큰 원인이라고 했다. 1990년부터 2017년 사이 노동 연령 인구(25~64세) 중 약물과 알코올로 인해 사망한 사람이 130만 명이 넘는다는 것이다. 같은 기간 자살로 사망한 사람의 수는 57만여 명에 달했다고 한다.     퍼거슨 교수는 이런 상황을 보며 소련 붕괴 직전의 상황이 떠올랐다고 했다. 20세기 후반 당시 모든 서방 국가에서 남성의 기대 수명이 늘어났지만 소련에서는 크게 줄어드는 상황이 발생했다고 한다. 35세에서 44세 사이 러시아 남성의 사망률은 1989년부터 1994년 사이 두 배 이상 늘기도 했다. 음주와 흡연이 큰 문제였는데 담배와 술 가격이 매우 쌌던 것이 원인 중 하나였다고 한다.     실제로 1990년부터 2004년 사이 시베리아에서 실시한 2만 5000건의 부검 결과를 분석한 결과, 심혈관 질환으로 인한 성인 남성 사망자의 21%의 혈중 알코올 농도가 사망에 이르게 할 수준이었다고 한다. 퍼거슨 교수는 2001년 기준 러시아 성인 남성 사망자의 사인 중 26%가 흡연과 관련 있었다고 했다. 1994년 러시아의 50~54세 남성의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140명에 달했는데 미국의 2015년 기준 45~54세 비(非)히스패닉계 미국인 남성의 자살률 역시 10만 명 기준 39.2명으로 높은 상황이라고 했다. 퍼거슨 교수는 이런 통계를 소개하며, “미국 내 절망사의 상황이 20년에서 40년 전 러시아에서 벌어진 일과 흡사하다”고 주장했다.     퍼거슨 교수는 소련 붕괴 당시와 미국의 의료 시스템이 표면적으로는 다르게 보이지만 문제가 있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소련의 의료 시스템은 자원이 부족했던 반면 미국의 문제는 지출되는 비용에 비해 결과가 현저히 떨어지는 상황이라고 했다. 소련이나 미국 모두 기득권층만 이익을 보는 의료 시스템을 갖췄다는 것이다.     퍼거슨은 미국의 국방 정책도 비판했다. 현재 미국의 외교 정책은 직접 개입해 다른 국가의 방어를 돕는 것이 아니라 충분한 무기를 제공하지도 않으면서 남들로 하여금 미국의 적들과 싸우도록 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는 미국이 다른 국가를 지켜줄 것이라고 오판하면,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 그리고 대만 등이 월남과 아프가니스탄의 전철을 밟는 상황이 전개될 수 있다”고 했다.     “특권계층과 일반 시민 사이의 괴리감 확대”    퍼거슨 교수는 미국 내 엘리트층과 일반 시민들 사이의 인식 격차 역시 너무 큰 상황이라고 했다. 여론조사기관 라스무센은 최근 연 소득 15만 달러 이상의 아이비리그 등 명문대학교 졸업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를 진행했다. 기후 변화 대응을 위해 가스, 육류, 전기의 배급제를 도입하는 것에 찬성하느냐는 질문에 이들 엘리트층의 89%는 찬성한다고 밝힌 반면 일반인은 28%에 그쳤다.     기후 변화 대응을 위해 500달러의 세금 등을 지불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엘리트층의 75%가 ‘그렇다’고 답한 반면 일반인들의 수치는 25%에 불과했다. ‘미국이 개인의 자유를 너무 많이 보장하는가’라는 문항에서 엘리트층의 절반 이상이 ‘그렇다’고 답했고 일반인은 15%만이 그렇다고 했다. 엘리트층의 88%는 개인의 재정 상황이 개선되고 있다고 했고 일반인의 20%만이 그렇다고 했다.     퍼거슨 교수는 미국의 법치제도가 야당 지도자를 탄압하는 등의 방식으로 악용되고 있다며 ‘소련식 정의 구현’을 보고 있는 것 같다고도 했다.     그는 중국의 부상에 대해서도 미국이 전혀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시진핑은 소련과 같은 운명을 피해야 한다는 교훈을 잘 이해했고 이에 맞게 중국을 이끌고 있다는 것이 퍼거슨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중국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섬(대만)을 봉쇄하고 3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는 위험”에 대한 준비가 돼 있는지 자문해봐야 한다고 했다. 그는 “1962년 쿠바 미사일 사태와 비교하면 상황이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다며 바이든이나 트럼프가 흐루쇼프가 되고 시진핑이 존 F. 케네디가 되는 상황이 펼쳐질 수 있다”고 했다.     퍼거슨 교수는 “우리가 소련처럼 타락하고 현재 펼쳐지는 신냉전에서 이기는 것을 포기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우려가 있다”고 했다. 그는 “나는 아직 신냉전에서 패배하는 상황을 막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있다”며 “일당(一黨) 체제하의 중국에서 벌어지는 경제적, 인구학적, 사회적 병리 현상이 궁극적으로 시진핑의 ‘중국몽(中國夢)’을 파멸시킬 것이란 희망이 있다”고 했다.     그는 “하지만 절망으로 인한 미국 내 사망자 수가 계속 늘어나고, 엘리트층과 일반시민 사이의 격차가 커질수록 미국 내 병리 현상이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로 글을 마쳤다. 김영남 기자 [kim.youngnam@koreadaily.com]미국 소련 붕괴 소련 체제 니얼 퍼거슨 스탈린 고르바초프 마약 펜타닐 사망률 자살률 절망사 구소련 냉소주의 트럼프 바이든

2024-07-30

[시론] 푸틴과 고르비

 러시아의 블라미디르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자신의 결정을 정당화한다. 우크라이나의 많은 도시는 잿더미로 변했고 민간인 살상, 강간 행위가 횡행한다는 소식이다. 보도에 따르면 침략군은 아이들을 데리고 피란 길에 나선 엄마들이 대부분인 무고한 시민들을 향한 미사일 공격도 서슴지 않는다. 확전을 예방한다는 명분으로 외부 세계는 직접적인 참전을 기피하는 상황이다.     우크라이나는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공화국(USSR, 1922~1991)을 구성하는 14개 변방 국가 중의 하나였다가 소련 붕괴와 더불어 독립한 국가이다. 맹주인 러시아는 소련  붕괴 후에 CIS(Commonwealth of Independent States)를 만들어 계속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으나 여의치 않았고 CIS는 유명무실한 기구가 되고 말았다. 우크라이나는 CIS에 옵저버 격으로 참여하기는 했으나 정식 멤버는 아니었고 나중에 대표단을 전원 철수했다. 지정학적으로 우크라이나는 같은 슬라브계인 러시아의 영향을 많이 받아 왔지만 그들만의 고유한 언어를 지켜 온 자주 독립 국가이다.         독재자 이오시프 스탈린이 사망하고 20여년이 흐른 1980년 초에 소련 정계에는 매우 이색적인 한 정치가가 등장한다. 바로 USSR의 마지막 서기장 미하일 고르바초프이다. 그는 미국과의 군비 경쟁에서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을 만큼 기울어진 소련 경제를 일으켜 세우고자 개혁 개방을 외치며 ‘글라스노스트’와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을 추진했다.     하지만 이미 소생할 수 없을 만큼 기울어진 경제를 회생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그는 1991년의 공산당 강경파의 쿠데타로 실각하고 USSR도 그와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운명을 맞는다.   소련의 최고 권좌에 있는 동안 그는 세계사에 커다란 발자국을 남겼다. 핵 탄두, 화학 무기, 중장거리 미사일 등을 포함한 군비 경쟁이 극에 달했던 냉전 시대(1980년대)에 그는 미국과의 지루한 협상을 통해 전략 무기 감축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의 힘겨운 노력에 힘 입어 세계는 숨 막히는 냉전 시대의 종식을 보게 됐던 것이다. 특히 독일에서는 그를 ‘통일의 아버지’의 한 사람으로 칭송하며 곧잘 ‘고르비’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당시 미국과 함께 세계 평화의 초석을 다지는데 크게 공헌한 그의 업적은  길이 역사에 남을 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러시아의 현 대통령 푸틴은 소련의 옛 영광을 꿈꾸며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그가 내세우는 숭고한(?) 명분은 오만한 그의 자존심에서 나온다. 민간인 학살 등 전쟁의 참화는 세계 제일의 부자(순자산 약 2000억 달러 추정)로 알려진, 부패한 전 KGB요원에게는 별 의미가 없을 것이다.       한편 올해로 91세가 되는 고르바초프는 지금도 활발한 활동을 멈추지 않고 있다. 지난 2월 9일에는 자신이 설립한 모스크바 국제대학 강연에서 푸틴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는 푸틴이 민주적인 개혁을 마다한 채 하향식 독재를 계속하는 것은 체제 붕괴의 길을 재촉하는 것뿐이라고 강조했다.     얼마 전 레이건 도서관에 소장돼 있는 비디오를 유튜브에서 보았다.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레이건 및 아버지 부시 대통령과 어울려 워싱턴과 모스크바 그리고 아이슬랜드를 번갈아 방문해 가면서 어렵게 군축협상에 임하는 과정을 수록한 동영상이다. 잘 생긴 그의 얼굴에서 풍기는 인상은 푸틴의 모습과는 무척이나 달랐다. 라만섭 / 전 회계사시론 푸틴 고르비 소련 붕괴 슬라브계인 러시아 소련 경제

2022-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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